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오후 느지막이 올라가서 하늘 플랫을 찍어놓고,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노을을 보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기계처럼 오직 관측에만 집중하는 시간. 망원경 시야에 타깃이 들어오도록 맞추고, 초점 조절하고, 노출 주고, 로그 적고 …… 그러다 보름달이 가까이 오면, 달빛이 너무 밝아서 내 타깃이 안 보인다며 불평도 하고 달이 너무 예뻐서 감탄도 하며, 의자에 푹 파묻혀 초코파이를 우적우적. 그러다 달이 지면 아침이 오기 전까지 다시 모니터 속으로 빠져든다. 허락된 짧은 밤이 지나면 아쉬운 마음으로 박명을 맞으며 다시 플랫을 찍는다. 벌게진 눈으로 돔을 닫고 망원경을 제자리에 파킹한다. 유독 밤새 빈틈없이 관측한 날은 파킹하는 그 순간이 가슴 끝까지 뿌듯하다. 너무 졸려서 미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비우고는, 관측자 숙소의 암막 커튼이 주는 그 따뜻한 어둠 속에서 죽음처럼 잠들고 싶은, 관측하기 딱 좋은 날.


🔖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무렵에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